그런데 해밀턴은 사생아였습니다. 바람둥이 어머니는 불륜으로 해밀턴을 낳았습니다. 아홉 살 때 아버지는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났고, 13세 때에는 어머니마저 병으로 떠났습니다. 이종사촌이 후견인이 됐지만 1년 만에 자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해밀턴이 재무장관을 맡았던 때의 미국 경제는 아마 지금의 미국이나 우리나라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입니다. 국가 존립이 위태로웠을 겁니다. 이때 해밀턴이 내놓은 경제정책은 그가 독립전쟁 때 경제에 대한 무지를 자각하고 포화 속에서 밤새워 이 분야 지식을 쌓고 고민 끝에 만든 방안이었습니다.
경제위기에서 수장(首將)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천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해밀턴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가진 약간의 천재성에 대해 칭찬한다. 내 모든 천재성은 이렇게 이뤄졌다. 내가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깊이 공부한다. 낮밤 가릴 것 없이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마침내 통달한다. 내가 그렇게 이룬 성과에 대해 사람들은 천재성의 과실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노력과 통찰의 결실일 뿐이다.”